미국 뉴멕시코주의 흥미로운 사실들 - 부자를 꿈꾸는 상상충전소
IT 및 생활 정보 / / 2023. 2. 15. 11:32

미국 뉴멕시코주의 흥미로운 사실들

미국 뉴멕시코주는 마법의 땅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지만 컬러풀 스테이트로도 알려진 뉴멕시코는 1912년 1월 6일 미국에 합류한 47개 주였다. 인구는 209만6829명(2019년 기준)으로 36번째로 인구가 많은 주이다. 뉴멕시코는 오클라호마, 유타, 텍사스, 콜로라도, 그리고 애리조나주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314,917 평방 킬로미터의 풍족한 물과 넓은 대지로 이루어진 이곳은 미국 내에서 다섯 번째로 큰 주입니다. 뉴멕시코의 주도는 산타페인데, 산타페는 뉴멕시코의 북부 지역 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뉴멕시코 화이트 샌드 국립공원
출처:미국 공식 여행 웹사이트

1. 사람들은 뉴멕시코에서 적어도 11,000년 동안 살아왔습니다.

현재 뉴멕시코의 고향으로 알려진 이 지역에 처음 사람들이 살았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기원전 9,200년경부터 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북쪽에서 왔고 베링 해협을 통해 현대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알래스카로 여행한 최초의 용감한 탐험가들의 직계 후손이었다. 이 초기 유목민들은 그들이 채집하거나 사냥할 수 있는 것을 먹으며 살아남았다. 수천 년 동안, 삶은 이것과 매우 비슷한 방식으로 지속되었다. 기원전 300년경, 사람들은 농작물을 농사짓기 시작했고 피트 하우스라고 불리는 단순한 오두막에서 살았다.

 

2. 뉴멕시코에도착한최초의유럽인들은스페인인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한 최초의 유럽인은 스페인이었다. 초기 스페인 탐험가들 중 일부는 뉴멕시코 지역 내의 매우 발전된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했다. 스페인 선교사인 Fray Marcos de Niza는 이 도시들이 전설의 "잃어버린 금의 도시들" 중 일부라고 절대적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이후 1540년에서 1542년 사이에 정복자 프란시스코 바스케스 데 코로나도가 이끄는 탐험대로 이어졌다. 코로나도의 탐험대가 뉴멕시코 지역에서 처음 접한 아메리카 원주민은 푸에블로족 중 하나인 주니족이었다.

 

3. 싼타페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수 도로 400여 년 전에 세워졌다.

현재 뉴멕시코 주를 감싸고 있는 이 땅은 1598년 스페인의 필립 2세에 의해 새로운 스페인 지방으로 처음 선언되었다.

흔히 누에보 멕시코로 줄인 이 지방의 전체 타이틀은 산타페 데 누에보 멕시코였다. 수도는 1610년 산타페 데 샌프란시스코 데 아시스(나중에 간단히 산타페로 줄임말)로 변경되었다.

4. 미국은 1846년에 뉴멕시코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1846년, 미국은 텍사스 공화국을 합병했다. 멕시코는 이 지역이 국가의 반란 지역이라고 주장하며 크게 공격했다.

그 결과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중, 미국 장군 스티븐 카니는 기병을 포함한 2,500명 이상의 병력을 산타페로 진군시킨 후 뉴멕시코를 장악했다.

 

멕시코 정부의 저항은 거의 없었지만 주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1847년, 지역 반군은 미국의 통치에 맞서 봉기하였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그 과정에서 찰스 브렌트 주지사 권한대행을 죽였다. 반란이 진압되었을 때, 적어도 300명의 뉴멕시코 원주민들이 사망하게 되었다. 이듬해인 1848년 뉴멕시코는 과달루페 히달고 조약으로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5. 아침 메뉴로 부리토는 뉴멕시코에서 발명되었다.

1970년대 이전에 삶을 살았던 사람은 누구나 꽤 암울한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아침 브리또는 1975년이 되어서야 발명되었다. 산타페 레스토랑 티아 소피아스는 1975년 처음 이 요리를 메뉴에 올리며 오늘날의 유명한 부리토가 탄생하게 되었다.

6. 뉴멕시코는 가장 큰 백사구의 본고장이다.

뉴멕시코의 화이트 샌즈 국립공원은 지구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여행지 중 하나입니다. 그 공원은 라스 크루즈라는 작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주의 남쪽 끝에 있다. 모래언덕 자체는 약 712평방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모래 언덕은 모래 자체에서 하얀색을 띠는데, 이것은 사실 석고와 같은 모래입니다.

 

7. 뉴멕시코사람들은 유럽인들이 북미에 도착하기 훨씬 전에 복잡한 선진사회에서 살았다.

서기 1000년까지 푸에블로 인들은 이 지역에서 선진화된 사회에서 살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거칠고 건조한 기후에서 사는 것뿐만 아니라 그 기후 속에서 잘 사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관개, 테라스식 농업, 복잡한 사회 구조를 갖춘 마을을 구성하였다.

 

푸에블로족은 (나중에 스페인인들이 그들의 마을이라고 불렀던) 거의 항상 절벽의 가장자리나 바위투성이의 메사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보통 푸에블로인 이라고 불리지만, 각각의 푸에블로 인들은 그들만의 정체성과 그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문화와 조상은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8. 뉴멕시코는 멕시코라는 나라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 아니다.

"멕시코"라는 이름은 원래 아스텍족이 사용한 나후아 틀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이것은 아즈텍 제국의 중심에 위치한 멕시코 중앙 지역을 가리킨다. 뉴멕시코 지역에 처음 발을 디딘 스페인 탐험가들은 이 땅이 아즈텍의 땅과 비슷하다고 판단하고 누에보 멕시코라고 불렀다. 사실 훨씬 뒤인 1821년에야 오늘날의 멕시코가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멕시코라는 이름을 선택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멕시코 국가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다.

9. 스페인은 푸에블로족에 의해 뉴멕시코에서 쫓겨났다.

누에보 멕시코에서의 스페인 통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격했다. 주지사들은 점점 더 탐욕스러워졌고, 이 지역에서 그들의 주된 목표는 푸에블로 사람들과 그들의 땅에서 가능한 한 많은 침략과 약탈에 열을 올렸다. 스페인의 초기 누에보 멕시코 통치 기간 동안 푸에블로 인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에서부터 그들을 완전히 학살하는 것까지 많은 악랄한 행위들이 자행되었다.

 

스페인이 푸에블로인의 종교를 말살하려 했을 때 비로소 마지막 필사의 저항을 시작되었다. 1680년 8월 10일, 북부 푸에블로 마을들은 스페인의 통치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고, 스페인들을 몰아내게 되었다. 산타페는 3일 만에 푸에블로 인들에게 포위되었고, 다른 모든 스페인 정착촌들은 폐허가 되었다. 스페인은 사실상 그 지역에서 쫓겨났지만, 12년 후에 훨씬 더 악랄한 복수를 하며 그 땅을 되찾았다. 반란은 잠시 동안 지속되었지만, 그것은 유럽의 식민지 개척자들에 대한 성공적인 아메리카 원주민 봉기의 유일한 사례였다.

 

10. 텍사스가 뉴멕시코를 침공하려 했지만 실패하였다.

1835년에 오늘날의 텍사스와 뉴멕시코를 포함한 이 지역은 사실 멕시코의 일부였다. 1836년, 우리가 현재 텍사스라고 부르는 것이 멕시코에서 분리되었고 텍사스 공화국이라고 불렸다. 그러면서도 싼타페를 포함한 뉴멕시코 지역의 상당 부분을 영유권 주장으로 내세웠다. 당시 텍사스 공화국의 대통령인 미라보 라마르는 산타페로 무역 탐험대를 보냈다.

 

많은 상인들과 그들의 물품들이 포함되었지만, 그것은 또한 포병 장비를 가진 대규모 군대와 동반되었다. 하지만 그 탐험은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이었다. 그들은 필요한 양의 음식을 가지고 왔지만 일찍부터 가이드를 잃었다. 그들이 마침내 뉴멕시코로 힘겹게 진입하였을 때, 뉴멕시코는 무장한 군대로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탐험대는 즉시 붙잡혀 멕시코 시티 남쪽까지 쫓겨나게 되었다.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